설계도는 있는데, 만들 공장이 없다 — 밸류체인 ③ 제작

생각에 잠긴 초록이 아빠

지난 글에서 원자로를 설계하고 허가받는 회사들을 봤습니다.

오늘은 세 번째 길목이에요. 그런데 이 단계에 조금 의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.

허가받은 설계도를 손에 쥐어도, 그걸 실제 쇳덩어리로 만들어줄 공장이 세상에 몇 곳 없다는 겁니다.

왜 아무나 못 만드나

원자로의 핵심 부품은 압력용기라고 부릅니다. 안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는 그 통이에요.

이 통은 수백 톤짜리 쇳덩어리를 통째로 두들겨 만듭니다. 여러 조각을 용접해 붙이는 게 아니라, 큰 덩어리 하나를 눌러서 형태를 잡아요. 이걸 대형 단조라고 합니다. 용접 자리가 적을수록 안전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듭니다.

문제는 이 작업에 필요한 설비예요. 수만 톤짜리 프레스, 그만한 쇳물을 다루는 제강 설비, 그리고 그걸 다뤄본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. 셋 중 하나만 없어도 안 됩니다.

도면은 컴퓨터로 그리지만, 압력용기는 여전히 거대한 망치로 만든다.

여기에 시간 문제가 겹칩니다. 1970~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을 거의 안 짓던 시기가 길었어요. 그동안 이 설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나라들은 라인을 접었고, 다루던 사람들도 은퇴했습니다. 지금 원전을 다시 지으려니, 설계 회사는 늘었는데 만들어줄 곳은 그대로인 상황이 된 거예요.

이 길목에 있는 회사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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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럼 지금 이걸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. (이번에도 어디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, 누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보는 겁니다.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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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WXT (미국). 오랫동안 미 해군의 원자로 부품을 만들어온 회사입니다. 잠수함과 항공모함에 들어가는 원자로가 여기서 나와요. 군용으로 라인을 계속 돌려온 덕에, 원전 공백기에도 기술과 사람이 끊기지 않은 드문 경우입니다. 최근에는 중장비 제조 회사를 인수해 만들 수 있는 물량 자체를 늘리고 있습니다.

Framatome (프랑스).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를 만드는 유럽의 핵심 제작사입니다. 영국 힝클리포인트C에 들어갈 2호기 압력용기를 완성했고, 증기발생기도 순차적으로 내보내고 있어요. 프랑스가 원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지어온 나라라, 이 라인이 살아 있습니다.

두산에너빌리티 (한국). 국내에서 원자로 주기기를 만드는 회사입니다. 대형 원전 주기기를 오래 만들어온 이력이 있고, 최근에는 SMR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어요. 지난 글에 나온 X-energy의 고온가스로에 들어갈 단조품 공급 계약을 맺었고, NuScale·TerraPower 같은 곳들과도 제작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. SMR 전용 생산 라인도 따로 늘리는 중이고요.

세 회사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. 원전을 안 짓던 시기에도 어떤 이유로든 라인을 돌리고 있던 곳들입니다. 미국은 군용으로, 프랑스는 자국 원전으로, 한국은 계속 지어온 원전과 수출로요.

구조로 보면

화이팅하는 초록이 아빠

앞의 두 단계와 성격이 확실히 다릅니다.

연료는 규제가 진입을 막고, 설계는 인증이 시간을 잡아먹습니다. 제작은 그런 게 아니에요. 설비와 사람이 물리적으로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. 돈을 넣기로 결정해도 공장을 짓고 사람을 키우는 데 몇 년이 걸려서, 단기간에 늘어나지 않습니다.

그래서 앞에서 설계 회사가 아무리 늘어나도, 이 단계가 따라오지 못하면 전체가 그 속도에 맞춰집니다. 밸류체인에서 병목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자리예요.


다음 글에서는 네 번째 길목, 다 지어진 원전을 돌리는 쪽으로 갑니다. 요즘 데이터센터가 원전 전기를 통째로 사간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와요.

오늘도 한 걸음. 🐴

이 글은 산업 구조와 만드는 과정을 정리한 개인 기록입니다.
특정 종목의 매수·매도 추천이 아니며,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독자 본인에게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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